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투박하고도 따뜻한 문래예술창작촌

카테고리 없음

by redeeming the time, 2022. 1. 2. 23:46

본문

012
문래예술창작촌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골목 (슬라이드쇼)

문래동의 인상

문래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몇 년전 예술창작촌에 위치한 건축사무소에서의 인턴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회사는 양재역과 이곳 문래역, 두 사무실에 자리 잡고 있어 상황에 따라 출근하였는데 나는 거리가 더 멀지만 독특한 문래동을 더 선호하였다.

지하철역에서 사무소까지 걸어가며 좁은 길, 막다른 골목, 노동의 현장을 한눈에 또 시선을 옮겨가며 담는 즐거움이 있었고, 점심시간 예상되는 체인점 맛이 아닌 메뉴를 고르는 재미가 있었으며 해가 지면 골목과 투박한 건물을 조금 모자라게 채우는 조명의 아늑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철 가공 업체들과 그 흔적을 지닌 채 사용하는 작업공간과 음식점, 카페가 곳곳에 산재 되어 작고 촘촘한 도시조직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길에 익숙해진 후에도 골목의 코너를 돌면 펼쳐질 공간을 기대하게 되었다. 또, 새롭게 들어선 이들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안부를 물으며 도움을 주고 받고 있었고, 점포 내 이웃이 선물한 작품이나 쪽지, 그림을 통해 관계를 엿 볼 수 있었다. 

한편, 영세한 철 제조업이 오랜 시간 자리 잡아 온 중에 최근 들어서게 된 예술 및 젊은층을 겨냥하는 트렌디한 상업 공간들, 이 이질적인 업종의 공존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업무 중 시끄럽게 들려오는 철 가공 기계 소리, 운반 작업 중 대화 소리는 오래된 건물의 벽을 통과했고, 제조업체의 작업은 내외부를 넘나들며 이뤄지기에 거리를 지나갈 때 위험함을 조성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고도 더 많은 문화예술인들과 창업가들이 들어서며 도시를 더 다채롭게 변화시켰고, 사람들은 이런 풍경에 관심을 가지며 경험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문래동의 숨은 경관

문래예술창작촌이 입지한 일대 또한 다채롭다. 문래역에서 영등포역까지 걸어갈 때면 이질적인 경관이 확연히 드러난다. 최근에 높이 들어선 대규모 상업/주거 단지와 낙후된 작은 건물이 밀집된 공업단지가 공존하는 풍경이다. 문래역 출구로 나와 선형의 문래공원과 아파트단지를 지나 문래예술창작촌으로 들어서면 작은 도시조직에 드문드문 독특한 작업공간이나 카페/음식점을 발견하게 된다. 점차 경인로쪽으로 향할수록 공장과 혼재되어 있어 금속 가공으로 시끄럽고, 작업 공간이 개방되어 도로를 점유하기도 한다. 이곳을 지날 땐 일에 방해가 될까 숨죽이게 되고 조심스러워진다. 40미터 8차선 경인로를 따라 영등포역을 향하여 가는 길의 한 편은 과거 대규모 공장 적지였던 큰 블록으로 구성된 상가와 아파트가 주로 위치하며 다른 한 편엔 영세공장들이 밀집되어 있어 이질적인 가로변을 볼 수 있다. 영등포역 주변엔 쪽방촌이 있으며 집창촌이 일부 잔재한다. 이를 넘어선 삼각형의 일반상업지역이 위치한다.

이와 같이 하나의 생활권 범위 내에서도 주체에 따라 주민, 근로자, 관광객, 경제적 약자계층의 공간 간 분리가 뚜렷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와 복합상업시설은 주민, 복합상업시설과 문래창작촌은 관광객, 문래 1~4가는 기계금속제조업 근로자와 예술가, 영동포역 앞 쪽방촌은 경제적 약자계층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보였다.

 


저녁이나 주말 때 영업하지 않는 제조업장 셔터에
그려진 그래비티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문래예술공장에서 제작한 문래창작촌의 지도
: 전시장, 복합공간, 공연장, 공방 및 작업실의 위치가
  기입되어 있다.

 

문래동 도시형태와 이용의 변화

일제시대에 형성되고 확장된 공업단지가 쇠퇴되고 주거 및 상업단지로 대체되면서 필지의 변형을 볼 수 있다. 대형공장의 부지였던 대형필지는 적정 규모로 분필되어 왔으나 소규모 영세업체의 밀집된 단지는 여전히 남아있어 이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후로도 뿌리산업으로서 영세 제조업이 산업활동을 이어나가며 2000년대 들어서 예술가 작업실이 집적하여 정착하고 복합상업시설이 들어서는 변화 양상을 보인다. 1,700여개의 금속제작/가공/판매 업체는 여전히 지역의 중심적인 풍경을 형성한다. 대부분 1,2인의 종사자수로 구성된 영세 업체들이 네트워크 공통재를 이루고 있기에 서로 지탱하며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권범철(2017). 문래동 뿌리산업과 네트워크 공통재. 대한지리학회 학술대회논문집. 106-106). 서로 다른 업체들이 생산과정의 한 부분마다 필요한 설비들을 분담하기에 이 네트워크는 생산활동의 기반이다. 또한, 오랜 시간 터를 잡아온 산업에서 축적되어 온 정보와 지식 그리고 영업망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전보다 축소된 산업으로 단지 상가에 불가피하게 공실이 생겨났다. 공실에 입주하며 기존 철공소와 동거하기 시작한 임차인은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온 예술가들이다. 2000년 초반부터 들어서고, 2008년 이후 급증하여 2017년엔 예술인 300여명이 120여개의 공간에서 활동 중으로 조사되었다. 독특한 분위기를 쫓아 카페/음식점 등 상업시설이 유입되며 최근 3년간 임대료의 4배 상승을 보이며(2016 문래지역 예술가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젠트리피케이션 발생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올드문래라는 카페 및 펍으로 운영되는 이 곳은 과거 일제 관사, 공장으로 이용되어 왔다. 문래예술창작촌과 주변은 영단주택이나 철공소를 리모델링하여 예술가 작업실 및 음식점, 카페로 사용하고 있다. 각 기능과 컨셉을 드러내되 내부구조를 보존하면서 개조한 공통점을 보인다.

개방형의 입구와 루프탑을 통해 주변 건물 및 분위기를 수용하는 형태도 볼 수 있었다. 

 

 

 


쉼표말랑(음식점)

제로스퀘어(오피스)

러스트(카페)
*더 알아보기
문래동 일대는 시기별 제도와 이용형태가 변화함에 따라 합필과 분필로 인해 현재의 도시구조를 갖게 되었다. 1912년 일본에 의해 방직, 중화학공업, 맥주 등 공장 설립과 함께 마을이 개발된다. 대형 필지의 공장을 중심으로 서울의 대표적 공업지역으로 성장하며 1940년대 초반 조선영단주택지가 건설되어 노동자를 위한 주거를 빠르게 공급하였다. 1961년부터 실시된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으로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금석, 기계를 다루는 업종이 다수를 이룬다. 1960년대 초 경인로를 중심으로 집적하기 시작한 소규모 제조업은 80년대 중반 청계천 세운상가 공장철거로 이주 업체의 증가로 제조업의 메카를 형성하였으며 주택도 철공업체로 변모하였다. 1990년대 수도권 공장 이전정책으로 대형공장은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였고, 98년 2011 서울 도시기본계획 영등포지역 부도심권정비 기본계획으로 대형공장 이전부지에 대한 적지개발이 논의됐으며 대규모 업무시설, 상업시설이 허가되었다.  (참고: 윤갑석, 박태원, 2016)

 

문래동을 다시 찾는 이유

나에게 한 때 일터였던 이 동네를 이후에도 종종 방문하게 된다. 근처 타임스퀘어 같이 대규모 복합상업물이나 상권보다도 동네를 걸으면서 식사와 대화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약속 장소로 정하곤 했다. 계절과 시간대별로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비교하기도 하고, 변화된 업종이나 공간들을 발견하며 재미를 느꼈다. 최근에 방문하였을 때, 예술창작촌 내부 작은 도시조직에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 들어선 요식업체들과 함께 폐업 혹은 업종이 변경된 점포들도 많이 보였지만 무엇보다, 붙어있는 두 건물의 벽면을 트고, 공간을 확장한 점포들이 눈에 띄었다. 기존엔 두 골목길을 사이에 둔 한 블록에 건물들이 두 행으로 구성되어 있는 형태였는데 마주한 필지에서 전면을 길게 두는 형태 혹은 이면으로 확장하여 양쪽 골목길로 출입구를 두는 형태를 관찰할 수 있었다. 

2020년 4월 30일, 스페이스 XX에서 나얼 개인전 'Pessimistic Optimist' 전시를 관람하였다. 문래예술창작촌에 전시공간으론, space xx, SRC 루인스, 대안예술공간이포, 공간사일삼, gallery imagery 등이 밀집하여 위치하고, 제조업 건물의 2층 이상이나 지하공간을 차지하며 보다 혼합된 형태를 보인다. 전시공간에선 지하 특유의 냄새와 철 가공 냄새가 섞여났으며, 일정하지 않은 계단과 거친 내부마감은 의도한 듯이 문래동 특유의 장소성을 담아내고 정제되지 않은 느낌이 작품들을 일상 가운데 발견되는 듯 보이게 했다.

당시 코로나 확진이 잠잠해진 평일이었는데 식당, 카페나 전시공간은 긴 대기시간을 가졌다.  식당 대기자 명단에 예약을 두고선, 동네의 골목과 상점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다니는 사람들, 부족한 테이블을 뒤로 한 채 다른 카페를 탐색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다시 거칠고 아늑한 건물과 골목을 지나 문래동을 떠날 때면, 불편해 보이는 동거 중에 각자의 기능을 그저 해내며 동네를 이루는 공간이 여전하길 바라게 된다. 전시나 휴게음식점의 집객 목적으로 또 제조업체의 작업 편리성 추구로 갖게 된 개방적인 입구 형태와 이절적 공간들의 요란함 없는 수직/수평적인 혼합이 잘 어우러져 보인다.



작은 규모의 전시 공간들이 제조업 건물의 이층 이상이나 지하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공간이포, 요꼬스튜디오 (왼, 오)




댓글 영역